차 한잔으로 마음의 여유를~

새디의쉼터

나 만의 공간

여행과 내 그림/울산

용연 처용암

떡꼬 2007. 10. 11. 20:57

 용연 처용암

 

 

 

처용암에 얽힌 전설

 

신라 제 49대 현강왕 때의 일이었다.

서울로부터 바다안에 이르기까지는 집과 담이 서로 이을 정도로 번창하여 초가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풍우는 사철 순조로와 풍년이 드니 풍악소리와 노래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때 대왕께서는 신하를 거느리고 동쪽의 여러 고을을 두루 살피시다가 마침 상개동 개운 마을에 이르렀다가 돌아갈 무렵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갑작스럽게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앞을 가려 길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대왕이 이 일을 괴상히 여기시어 좌우를 돌아보고  물으시니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이는 동해용이 신통한 재주를 부리는 것이 오니 좋은 일을 행하여 풀어주심이 좋으리라 하였다. 이에 임금께서는 용을 위하여 근처에 절을 세워주도록 왕명을 내리니 구름과 안개가 걷혀지고 해가 나타났다.

그래서 그곳을 개운포라 부르게 되어 개운동이란 이름을 지금도 남겼다. 이때 동해용이 크게 기뻐하여 아들 일곱을 데리고 임금앞에 나타나 춤추며 덕을 찬미하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중 아들 하나는 임금을 따라 서울에 돌아와서 왕정을 보필하였는데 그의 이름을 처용이라 하였다.

왕이 그를 서울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고자 고운 여자로써 아내를 삼게 하며 또 급간이란 벼슬도 주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아내의 미인됨을 탐낸 마마신이 사람으로 변신하여 밤에 그 집에가서 몰래 동침하고 있었다.

 밖으로부터 돌아온 처용이 자리에  두사람이 누웠음을 보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물러났다.

 이때 처용이 부르던 노래는 이렇다.

   동경(東京) 밝은 달에 밤드러 노니다가

   돌아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 네히러라

   둘은 내해었고 둘은 뉘해인고

   본대 내해다만은

  빼겼으니 어찌하리꼬

 

그때에 신이 나타나서 앞에 끓어앉아 사죄하되 내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지금 과오를 범하였는데 공이 노하지 않으니 감격하여 아름다히 여기는 바이며 금후 맹세코 공의 형용을 그린것만 보아도 그 문에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였다.

  이 일이 있은 뒤로부터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대문에 붙여서 요사한 귀신을 �고 경사를 맞아 들였다.

 이야기는 다시 되돌아가 서울에 돌아오신 왕이 영축산 동쪽기슭의 승지를 골라 절을 세우고 이름을 망해사 또는 신방사라 하였는데 용을 위해 세운 절이다.

지금도 울산 청량면 윤리에 있는 망해사가 바로 이절이다.

'여행과 내 그림 > 울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밀양 단장  (0) 2007.11.08
간월산  (0) 2007.11.03
선암 저수지 수변공원  (0) 2007.10.03
길상  (0) 2007.09.08
선암 수변공원  (0) 2007.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