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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생활/차(茶)의 역사

차(茶)의 기원

떡꼬 2007. 7. 10. 23:30

 

 

 

*차의 기원

 

 차(茶) 라는 말은 중국에서 비롯되어 세계인의 공통어로 자리 잡았다.

[cha:]로 발음하는 중국어가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지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지만 근원적인 발음은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를 흔히 참새가 울 때 입을 벌린 참새의 두 부리와 혀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작설 (雀舌 )이라고 도 부른다. 차나무 어린 잎을 가공하여 만든 식품인 차는 음식과 약으로써의 기능과 효능을 함께 지니고 있어 중국의 차 연구가들은 식약동원(食藥同源)의 신비한 물건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 같은 이유로 차를 마시는 차 문화가 창조됐는데 차문화의 극치는 음식이나 약으로서의 역할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 종교적 상향과 역사 속에서 이룩 되었다.

 

*한국의 차 문화

 우리나라 차의 역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서기 48년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에게 꿈의 계시를 받고 시집 온 인도 아유다국 공주 허황옥이 많은 금은보화와 패물, 비단 등을 가지고 왔는데  그 속에 차나무씨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신라시대에 들어와서는 경덕왕과 충담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이에 따르면 왕은 충담스님이 정성껏 달여 준 차를 마셔보고 훌륭한 맛과 향기를 찬양했고 , 스님은 왕을 위하여 즉석에서 안민가를 지었다고 한다.

또 삼국사기에 따르면 흥덕왕3년 견당사 대렴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차씨를 가져온 것을 왕명에 따라 지리산에 심었다고 하는데 이무렵 신라에서는 차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신라의 다인으로는 최치원,원효대사 등이 등장한다.

 고려에 와서는 특히 불교문화와 더불어 차가 기호음료로 더욱 사랑받게 되고 찻집까지 생겨서 일반 백설들에게 차를 팔았다고 한다.

또 궁중에서는 차를 전담하는 차방도 생겼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남부지방에서 소량으로 생산되는 차를 공물로 나라에 바치게 됨으로써 백성들의 어려움이 막심했다. 이에 성종때의 거유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함안군수로 부임했을때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하여 차밭을 만들어 차를 생산케 하기도 했다

또 선비들 사이에도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차를 애호하게 되었으며 차는 선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한다고 하여 차선일체(茶禪一體)라고도 말하고 있다.

 

 

 

 *차는 왜 마시는가?

우리나라는 녹차의 나라다 .20세기 후반 들어 홍차나 우롱차도 조금은 팔리고 있으나 생산량이나 유통량으로 볼때 녹차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 우리나라에서 녹차를 생산하고 마신 것이 신라 때부터 시작되어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졌다.

예로부터 군자가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 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역시 녹차가 적합한 기호음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차나무 잎으로 만들어 졌어도 서구인들이 좋아하는 홍차는 향과 맛이 진하여 마치 기름진 음식과 같다.

그래서 설탕을 넣고도 우유나 레몬즙 같은 것을 넣어 마셔야 한다. 그러나 녹차는 담백해서 가미하지 않고 그 순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중국에서 일부 마시는 우롱차는 홍차와 녹차의 중간 정도라고 보면 된다.

녹차는 담백하면서도 형언할 수 없이  묘한 맛을 느낄 수 있다.